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소보 전투 (문단 편집) ==== [[세르비아 제국]]의 분열 ==== ||[[파일:Vukasin_ugljesa_1371_en.png|width=100%]]|| 1350년에 솔룬을 정복하며 [[세르비아 제국]]의 절정을 이르게 하였던 스테판 우로시 4세([[스테판 두샨]])는 소아시아에서 무섭게 세력을 확장해 나가던 오스만 베이국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오르한]]의 아들과 자신의 딸을 결혼시켜 동로마 제국에 대한 공동전선을 제안하였으나 더 큰 야심이 있던 오르한은 그를 거절하였다. 1351년에 오스만 군대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유럽에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이듬해, 디모티카 전투에서 오스만 군대는 세르비아군에 대승을 거두었다. 이에 1354년, 스테판 두샨은 아비뇽에 사절을 파견하여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대신 기독교 국가들의 대오스만 전선 지휘자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리고 1355년 12월 20일, 제국의 미래를 걱정하던 스테판 두샨은 불확실한 이유로 사망하였다. 두샨의 뒤를 이은 외아들 스테판 우로시 5세는 19세의 젊은 왕이었지만 정치적으로 무력하였다. 그는 부왕 대에 급격히 늘어난 영토를 통제하는데에 실패하였고 제국은 급속히 분열되었다. 숙부이자 스테판 두샨의 이복동생인 시메온 우로시는 테살리아와 에피로스를 점거한 후 1360년에 칭제한 것을 시작으로 각지의 영주들이 독립하였다. 발시치 가문이 제타(몬테네그로) 및 라슈카(세르비아 중남부) 지역을 차지하였고 므르냐브체비치 가문은 마케도니아 지방을 중심으로 서쪽으론 [[오흐리드]] 호수, 남쪽으론 할키디키 반도에 이르는 영역을 장악하였다. 후자의 영토는 부카신, 우글레샤 형제가 다스렸는데 1365년에 스테판 우로시 5세로부터 각각 공동통치자와 [[데스포티스]] 호칭을 얻어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